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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체농장

ecobgri | 2016.04.05 13:09 | 조회 3454

[과학동아 4월호] 내용 중에서 일부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공간 ‘시체농장’


동아사이언스 | 입력 2016년 03월 30일 11:39 | 최종편집 2016년 04월 05일 11:00

 

온기가 남아 있는 시신이 백골이 될 때까지 매일 사진을 찍는 일.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해 온 일이다. 처음에는 자연 상태로 땅 위에 놓여 부패해 가는 시신들을 보는 것만으로 마치 지옥에 와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잖아도 피를 보면 현기증이 나는 사람인데 매일같이 그런 모습을 접하는 게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그러나 불과 몇 주 만에 그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어제 시신의 머리에 있던 파리 알이 오늘은 유충이 됐을까?’, ‘어제는 너구리가 오른팔을 훼손했는데 그 부분의 부패 양상이 다른 신체 부위와 달라졌을까?’, ‘어제 가슴 쪽에 구더기가 많이 모여 있었는데 오늘쯤 뼈가 노출됐을까?’. 매일 시신의 사진을 찍으러 갈 때면 온갖 질문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답이 맞을 때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일러스트 김대호 제공    
일러스트 김대호
  

나는 시체를 연구한다


나는 미국 테네시대 법의인류학센터의 인류학연구시설(ARF), 별칭 ‘시체농장(Body Farm)’의 첫 한국인 연구원이다. 시신이나 동물 사체의 부패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세운 시설을 시체농장이라고 일컫는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체농장은 모두 6곳인데 1980년에 설립된 테네시대의 시체농장이 가장 오래됐고, 나머지는 모두 지난 10년 사이에 세워졌다. 미국에서 ‘시체농장’이라고 하면 대개 테네시대의 시체농장을 말한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소설이나 드라마, 방송에도 가장 많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법의인류학자로서 박사과정을 보낸 5년 동안 이곳이 나의 일터이자 연구실이었다.


시체농장을 설립한 사람은 테네시대 인류학과장이었던 윌리엄 배스 교수다. 그는 1977년 한 사건을 의뢰받았다. 파헤쳐진 무덤 속에서 턱시도 차림의 변사체가 앉은 채로 발견됐다. 배스 교수는 시신의 부패 상태를 보고 그 시신이 죽은 지 1년이 채 안됐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시신은 1864년 남북전쟁 당시 사망했던 윌리엄 샤이 대령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배스 교수는 “내가 성별, 인종, 나이, 신장은 모두 맞췄는데 사후경과시간을 무려 113년이나 잘못 추정했다”고 고백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배스 교수는 시신의 부패 과정과 사후경과시간 추정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3년 뒤 배스 교수는 테네시대의 지원을 받아 기존에 없던 연구 시설을 설립했다. 약 3305m2 정도의 규모로 시작된 시체농장은 현재 네 배인 1만3223m2 규모로 커졌다.


법의인류학센터에는 시체농장 운영을 위한 시신기증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기증자의 시신과 뼈는 모두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므로 신원과 사인, 그리고 생전 정보가 확실한 시신만 기증받는다. 최근에는 생전에 본인이 서면으로 기증 의사를 밝힌 경우에만 기증을 승인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 경제가 악화되면서 장례비를 아끼기 위해 유가족들이 망자의 시신을 기증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매년 150건 이상 되는데 시체농장에서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양승 박사가 시체를 촬영하는 모습. - 현철호 제공    
정양승 박사가 시체를 촬영하는 모습. - 현철호 제공        

시신 사진만 54만 장


기증자가 사망해 법의인류학센터로 오면 시신마다 고유번호가 부여되고 간단한 시료 채취 작업을 거친 뒤 시체농장에 안치된다. 연구자의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시신의 옷을 벗긴 뒤 배를 깔고 엎드려 누운 자세로 땅에 놓고 검은 비닐로 덮는다. 기증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비닐 안의 온도와 습도를 높게 유지해 부패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법의인류학센터에서는 2011년 2월부터 시체농장에 들어오는 모든 시신의 부패 상태를 매일 여러 각도로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첫 담당자였는데 2014년 8월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매일 시체농장에 나가 찍은 사진이 54만 장 정도 된다.


내가 맡았던 시신은 230구에 이르는데, 시신마다 이곳에 오기까지의 사연이 있다. 하루는 40대 중반의 여성이 “자살을 한 사람의 시신도 기증할 수 있냐”는 문의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신원이 확실하고 전염병이 없으면 기증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얼마 뒤, 그녀를 시체농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몸무게가 250kg이 넘었는데 사망하기 한참 전부터 거동도 못하고 약물로 간신히 생명을 버텨오다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본인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자신의 몸을 기증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 시신이 부패하던 몇 달 동안 나는 최대한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그분의 마지막 바람이 헛되지 않길 바라면서. 그리고 실제 그 사진을 최근 발표한 논문의 자료로 사용했다.

 

윌리엄 배스 컬렉션 - 정양승 제공    
윌리엄 배스 컬렉션 - 정양승 제공        

부패가 진행돼 시신이 완전히 백골화되면 남은 뼈는 세척한 뒤 ‘윌리엄 배스 컬렉션’에 보관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세세히 기록한다. 미국의 과학수사 드라마 ‘CSI’에 소개된 에피소드 가운데 살인범이 피해자의 시신을 시체농장에 유기하는 내용이 있다. 시체농장에는 이미 수많은 시신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시신을 유기하면 범행을 감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만약 드라마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법의인류학센터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나는 그 범행이 24시간 내에 밝혀질 거라고 확신한다.


시체농장은 여느 대학 실험실처럼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한다. 심지어 시신 기증자의 유가족들도 시체농장을 둘러볼 수 없다. 하지만 시신의 부패와 관련된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에게는 항상 문이 열려 있다. 연구자는 시신의 수, 성별, 몸무게 등을 특정해 연구 계획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 여러 구의 시신이 필요한 경우 법의인류학센터는 필요한 만큼의 시신이 기증될 때까지 먼저 기증된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한다. 여러 구의 시신이 한 구덩이에서 부패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2014년에 진행된 적이 있는데 성별이나 몸무게 등 조건에 맞는 시신 20여 구를 모으기 위해 6개월 정도 기다리기도 했다.

 

ARF 제공    
ARF 제공        

법의인류학의 보물 창고


시체농장은 미국의 법의인류학 발전을 위한 보물 창고 역할을 해왔다. 시신의 부패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시신 그 자체는 물론 곤충, 토양, 식물, 미생물 등 주변 환경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고 이는 사후경과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추정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현재 배스 컬렉션에 보관돼 있는 1300여 구의 뼈 역시 귀한 자료다. 뼈를 통해 생전의 생물학적 특징(성별, 인종, 연령, 신장 등)을 추정하거나 질병, 뼈 손상 등을 연구하려는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2014년 가을부터 2015년 여름까지 1년간 시체농장과 배스 컬렉션의 자료를 이용해 출판됐거나 학회에 발표된 연구가 무려 73건이다. 나 역시 시체농장에서 보낸 5년간 여러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연구다.

 

시체농장은 연구자를 위한 실험실일 뿐 아니라 경찰이나 범죄 수사 요원들에게 중요한 훈련장이다. 매년 미연방수사국(FBI)이나 테네시수사국(TBI), 국립법과학협회(NFA) 등 각종 수사 기관은 수사 요원들을 시체농장에 파견해 암매장 시신을 탐색하거나 발굴하는 기법을 훈련받도록 한다. 실제 시신을 사용하므로 훈련의 모든 단계와 내용이 실제 상황과 비슷해 훈련효과가 크다. 시체농장은 이처럼 죽은 이에 대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한다.


배스 교수는 언젠가 시체농장에서 일하고 있던 내게 “이곳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라고 했다. 시신 기증자의 삶은 마무리됐지만 바로 이어서 온갖 다른 생명체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시신을 분해하며 살아가고, 이런 과정을 살아있는 사람들이 연구한다. 많은 이들이 시체농장 이야기를 단순한 괴담이나 흥밋거리로 취급하지만 시체농장이 미국의 법의인류학 발전에 미친 영향은 크다. 법의인류학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시체농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나와 같은 법의인류학자가 보기에 신기하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나라에도 시체농장과 같은 시설이 설립돼 학문적 발전은 물론 범죄 수사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 필자소개

정양승 yangseung77@gmail.com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테네시대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동안 시체농장에서 시신 230구의 부패 과정을 매일 사진으로 촬영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현재 미 국방성 소속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 감식소에서 법의인류학자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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