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배려하는 동문 문화
생각하고 배려하는 동문 문화
<장진수 동문>
지난 2008년 지스트 환경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잠시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생물화공학부 강단에 선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거란족, 조선족, 통일, 광개토대왕 등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들을 되새기고 우리의 고대 역사가 숨 쉬는 장소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뜻 깊은 경험이었다. 한편 그곳에 재직하고 있던 교직원들과의 만남 역시 내 인생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재미있는 한 장면을 소개하자면. 언젠가 약 20여 가족이 모인 교직원 구역 모임에서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하고 새로 오신 교수님이 인사를 하게 되었다. 여느 모임의 신입 환영식처럼, 고참 노 교수께서 신참 군기를 잡는 재미난 풍경이 펼쳐진 것. 노 교수가 “몇 학년 몇 반? 어디서 왔나?” 하고 묻는다. 퇴임 한 신임 교수는 잠시 당황한 듯 망설이다 “6학년 3반이며, 서울 모 대학에서 총장을 퇴임하고 왔습니다.” 라고 답했다. 노 교수는 이어 “그래, 아직 어리구만. 얘야! 주방 가서 물 좀 떠오너라!” 하며 군기를 잡는다. 잠시 어색한 정막이 흐르다, 십여 분 정도의 노 교수님들이 “왜, 꼽냐!” 하시고는 박장대소하는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한국에서 퇴임한 분들이 오셔서 강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2012년부터 중국 교직 법이 바뀌어서 활동할 수가 없다. 60대에 정년퇴임을 한 분들은 젊은 교수 못지않게 열심히 뛰어다니신다. 이분들의 3년은 젊은 교수의 10년의 흐름과 같은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7학년 분들은 의자에 앉으면 쉽게 눈을 감으시고 젊은 교수가 근접할 수 없는 마음과 생각으로 일을 쉽게 처리하신다. 인생을 통달한 모습과 지구를 들어 옮길 정도의 무게와 흐릿하고 작은 눈으로 우주의 현상을 자세히 보는 듯하고 자존심 강한 60대 퇴임 교수님을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린다.
이분들 나이를 합하면 약 천 살이 훌쩍 넘는다. 연륜이 더해서인지 다들 인생을 통달한 외모와 호탕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존심 강한 60대 줄의 신임 교수들도 이들 앞에서는 순진한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곤 하였다. “나는 전직 모 대학교 총장이었으며 7학년 8반이고, 재는 대전의 어느 연구소 소장으로 퇴임한 7학년 7반, 또 저 친구는 별 2개 달고 전역한 7학년 1반. 이 친구는 대그룹 회사의 부사장 하다가 온 7학년 0반. 자네보다 10년 연배의 형과 누나들이니 잘 모셔야 한다. 어느 사모님은 “누나라고 해봐요.” 하시며 맛있는 것을 내어 주시며 웃으시던 노교수와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퇴임 교수님들의 30여 년 현직 경험과 진솔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곤 한다. 이분 중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는 단 1년도 해보지 못하면서, 인맥과 족보를 과시하고 인생의 승리자처럼 위선적으로 살아왔다고 자책하시는 분도 계신다. 처음 교직 생활에는 강의시간 1분 전 까기 자료를 만들어서 강의한 후 바로 다음 강의 자료를 만드는 반복을 3년 가까이 허둥 되었던 모습을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10년 후에도 자신의 강의 자료를 반복하여 강의하면서 형편없는 자신의 실력을 경험하신다. 이분들은 30대 강의는 자신이 아는 것 외에 이것저것을 전부 가르치려 하고, 40대는 자신이 아는 것만 가르치고, 50대는 생각나는 것만 가르치고, 60년대는 퇴임 후 먹고 살 걱정을 하시면서 자신이 다양하게 일 할 수 없는 능력을 한탄하신다. 이분들은 인간으로서 진실 되게, 학자로서 명예롭게, 지식인으로서 용감하게, 가장으로 든든하게, 동료로서 신뢰 있게 행동하지 못했으며 스승으로서 학생의 사표가 되지 못했음을 고백하신다. 퇴임 교수님들은 자신이 학자로서 얼마나 유명한지 한 번도 과시하지 않고, 가지고 계신 부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엄청난 연구 실적이 자신의 것인 줄 모른 체 베개 삼아 낮잠을 청하곤 한다. 퇴임 후에야 하지 못했던 것을 실천하시고자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사랑과 봉사와 헌신, 겸손한 자세로 자신들의 인생 대미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문 모임으로 각설해보자. 동문 모임은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나게 해준다. 보고 싶은 생각에 며칠씩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동문 모임은 또 재학생에게는 성공한 졸업 선배들을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재학생들은 자신의 롤 모델을 찾아서 배우고자 한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졸업생 또한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지스트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학생 수가 많지 않은 대학원이어서 졸업생 선배들이 수적으로도 적을 뿐 아니라 소속된 기관에서도 아직 중견급 직책을 갖는 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젊다는 것 또한 우리 동문회가 특히 신경을 써서 보완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만일, 우리 동문회가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신 60~70대 분들이 많이 계시면 졸업생의 잘못과 고민을 잘 인도하리라 생각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문 모임에서의 호칭 사용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흔히 아무개 박사님 또는 아무개 교수님하고 쉽게 호칭하는데, 이는 박사가 아닌 석사 졸업생을 배려하지 않은 태도일 수도 있다. 모든 대화에 박사님이라는 용어야 붙어야 한다면, 박사학위가 없는 동문은 심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음을 고려했으면 한다. 재학시절 학교에서 사용하던 형, 동생, 누나, 오빠, 이름 또는 누구 아빠(엄마)로 부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 부분이지만,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동문 모임 문화도 바뀌었으면 한다. 다양한 모임의 주제로 술을 마시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동문도 모임에 나올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지스트 졸업생은 교수라는 직업을 갖는 것에 우선시하고 차선으로 국가 연구원, 국가 공무원을 생각한다. 그러나 다양한 세상의 전문 분야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학교와 동문회의 과제일 것이다. 애플 신화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처럼 그리고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처럼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고 도전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동문의 목소리가 울렸으면 한다. 정감이 넘치는 동문회 활성화는 “모교발전”, “동반성장” 등 미래 성장 지향적 가치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동문의 고민과 어려운 점을 껴안아주는 인간적인 조직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약자를 배려하고 지식인으로서, 또는 지성인으로서 생활 속에서 진실 있게 행동하는 동문회를 만드는 것은 지스트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라 생각한다.
지스트에서 보냈던 기억을 돌이켜 보면,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울타리 숲에서 데이트 하다 걸려 오리발 내미는 동문. 갑자기 전화해서 신혼집을 “세팅해야” 한다면서 장롱 들어갈 자리를 재어 달라던 타 학과 입학 동기. 어느 날 새벽 시간 아이 소풍 보내고 정문으로 들어오는데 “학생이 바람피우면 안 된다”며 야단치던 동갑내기 이은주 교직원. 윤리적 도덕적으로 잘못하면 크게 야단칠 것 같은 도덕 선생님 같기도 하고 막내 동생 같기도 했던 이애실 교직원. 항상 성실한 모습으로 행정적 지원을 해주시던 조병관, 조은정 교직원. 학생들의 연구 성과를 멋지게 포장하여 언론과 방송사에 홍보해 주시는 임성훈 교직원. 학생 남편을 24시간 연구와 학업에 내어주고 아내와 아이 엄마로 묵묵히 가정을 지켜주신 기혼자아파트 아줌마 부대원들. 교육의 진실성 연구의 진정성과 과제의 성실성을 알게 해주신 문승현 교수님, 대형과제를 완벽이 수행하는 능력을 보여주신 김인수, 김영준 교수님. 그리고 토양지구화학 학문과 유전자의 융합 학문 세계를 환경공학적 의미로 학위 지도를 해주신 김경웅 교수님, 외국 학회에서 만나면 어려운 점을 해결해주실 뿐 아니라 무조건 아군이 되어 주신 타 학과 교수님들. 나는 이렇게 역동적인 성장과정 속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와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우리 학교가 좋다.
지스트의 발전과 동문에 대한 배려를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 진정한 인간적 가치의 실현에도 적극적인 지스트 동문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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